삶의 기록/일상 일기

서툰 그대로

JoyDo 2022. 10. 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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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하는 블로그는 아니어도 그래도 블로그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끔 찾아오는 일상의 짧은 순간들을 잊어 버릴까 봐.

일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 덩어리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꽤 행복한 순간들도 군데군데 있다고 누가 그랬는데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가 왠지 모르게 불안 투성이 ㅠㅠ

학위 논문 준비 중이라 더 그런 것 같은데, 아무리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해도 나라는 사람은 끊임없이 대중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이 똥 같으면 어쩌지'하는 그런 불안감 같은 게 도처에 있는 느낌이다. 

논문 쓰기 시작한 지... 결혼식 준비 전까지 포함하면 한 반년 정도는 전부터 날짜를 세어야 할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내가 생각해 둔 주제에 대해서 관련 논문도 읽어 보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한 건 2주밖에 되지 않았다. 

미리 생각해 둔 아이디어에 대해서 지도 교수님께 피드백 받은 것도 한두 달 정도 되었는데, 교수님은 이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발전했다고 믿고 계실 텐데 나는 발전시켜 놓은 게 없어서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괴롭기만 하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왜 이렇게 븅신 같이 써 놨지.'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써 둔 글도 시원하게 지우지도 못하고, 얼마나 더 발전시켜서 써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읽고 또 읽고...

그러다가

개뿔 내 팔자에 무슨 좋은 논문이야 하면서 도나스나 사 먹으러 밖에 나갔다가 우체통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서류 봉투를 보았다. 

밖에서 얼마나 굴렀는지 서류 봉투는 당근 헤지고 헤졌고, 안에 있는 책은 모서리가 다 닳아서는... 분명 새 책을 보냈을 텐데 진짜 중고책 같은 영어책 한 권이 무심하게 있었다.

제목이 대충 '내가 늙으면 안 할 것 같은 바보 같은 짓들' 정도로 해석이 되는 건데

읽을 논문이 너무 많아서 우선 읽는 건 뒤로 미루었지만 책 표지에 쓰인 글귀... 하앜ㅋㅋ ㅠㅠㅠㅠ 팔지도 못하게 와우

저렇게 꾹꾹 눌러서 삐뚤빼뚤 ㅋㅋㅋㅋ 얼매나 서툰지 문법도 틀렸고 와... 한국어 1급 단어 친구도 '춘구'인지로 써 놓고 등신...ㅋㅋㅋㅋㅋ 휴 ㅠㅠ 그래도 쫌 감동이네.

'난 등신 바보 천치인가'하던 것도 잠시고.. 내가 잠시 누군가에겐 뭐 의미 있는 사람일 수 있겠구나 해서. 그리고 좀 귀여운 것 같아서. ㅎㅎ 블로그에 남겨야지.

있는 친구 관리도 못해서 그나마 있던 애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잎새 같이 겨우 붙어 있는 애들도 바람 조금 불면 곧 떨어질 것 같은 내 취약하디 취약한 인간 관계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애가 여기 있었구나 ㅠㅠ 한국어 쥐뿔 완벽한 거 없는데 너무 웃기고 얘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고마워라.ㅠㅠ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아직 친구가 남아 있군요.

남들은 공부도 하고 인간 관계도 잘만 하던데... 나는 공부 하나 하는 것도 괴로워서 절절 매고 동네방네 공부한다고 힘든 거 다 티 내고 다니는 나라는 애...ㅎ 석사 졸업하면 박사는 꿈도 꾸지 말고 마지막 잎새 몇 개 남은 거 간수도 잘 하고 부모님 사는 것도 돌아 보고 전화도 더 자주 하는 그런 착한 딸이 되어야지. 왜 지금부터 안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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