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업 강의에 특화된 한국어 강사다.
석사 학위도 있고 나름대로 내 전분 분야라고 생각하는 주제로 논문도 썼으니
대학 기관 한국어학당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그냥 계속 사기업 강사로 남아 있는 중이다.
나는 여러 기업체 주재원의 한국어 과외를 하는 걸로 줄곧 밥벌이를 해 오고 있는데,
회사와 나 사이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통칭 에이전트 (혹은 에이전시)라 불리는 업체를 끼고 일을 한다.
지금까지 여러 에이전트들과 연관되어서 열심히 강의를 해 왔고
그 중 잘 맞다고 생각하는 두 곳과 꾸준히 연을 맺고 강의를 했었다.
잘 배우고 연구해서 남을 돕는 걸로 돈을 번다는 게
나에게는 정말로 매력적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다.
남의 시다를 하든 내가 직접 돈을 받고 강의를 하든
목적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이제까지 딱히 불만 없이
에이전트가 소개해 주는 주재원들이나 에이전트 소속의 직원들과 참 잘 지내 왔다.
작년 말에
한 에이전트에서 다른 한 에이전트로 모든 강의가 이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 이제까지 일해오던 방식에는 변화가 없을 거고,
에이전트들에서 강사 관리에 사용하는 lms들에도 완벽하게 적응했기 때문에
뉴스에서 지나가듯 듣는 "A가 B랑 합병한대"와 같은 소식 정도로 치부했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이관된 에이전트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강사료 보전이었는데,
이관되면서 내부 규정에 따라 강사료를
시간당 4천원을 깎아서 지급한다는 것에 동의를 요구하는 문자였다. 핳핳..ㅠㅠ
자조적이게도 언어 강사는 싸다.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개인이 대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넣듯이 강사 지원서를 넣어서 강의를 따는 일은 불가능하다.
거대한 시스템을 굴리려면 원큐에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 눈에 관리가 되도록 해야 하고,
그런 관리 시스템이 없는 개인 강사의 경우
동반되는 비용이나 시간적 손실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갖가지 시스템을 갖춘 사업자 간의 거래가 효율 면에서 여러 가지로 월등한 것이다.
귓등으로 듣긴 했지만 학부 때 경영학을 공부했던 나에게
이런 사실 자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전혀 억울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7년차 베테랑 한국어 강사인 나에게
시급 보전이 아니라 4천원을 깎겠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주려면 다 주든지, 떡볶이 1인분도 못 사먹는 4천원.
회사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울해졌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내 경력과 커리어가
앞으로 또 다른 7년을 이 회사와 일해도 발전이란 없겠구나.
강사의 KPI 측정 시 나의 강의력이나 연구 능력이 수치화되고 산출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스템 안에서 나는 낮은 등급의 강사일 것이다.
남이 알아 주든 말든 열심히 소논문 읽고, 강의에 적용시키면서
학습자가 배우고 발전하면 받는 돈과 상관없이 나도 발전해서 참 행복했는데.
문자 한 통으로 순식간에 내 마음속에서 갑자기 큰 지진이 났고 여진이 계속 이어졌다.
아침에 받은 문자의 여파가 너무나도 강력크-했던 것인지
그날 오후 강의하러 간 교실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모두
오전부터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미세먼지 탓으로 돌려야 했다.
나오는 눈물은 닦고 나오려던 눈물은 꾸역꾸역 밀어넣으면서
강의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그 시간을 보내고서
각 클라이언트에 연락을 취했다. 앞으로 한국어 강의는 힘들 것 같다고..ㅠㅠ
에이전트 담당자 분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저, 거기 강사 풀에서 빼 주세요. 그냥 앞으로 제가 어떻게 알아서 먹고 살 길 찾을게요."
담당 매니저 님이 회사 대신 죄송하고 너무 아쉽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도 (진심으로) 매니저 님 때문이 아니고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음력 설 전에 여러 군데에 전화하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눈물을 많이 쏟았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호소한 점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더 이상 가난하고 바쁜 강사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을 멈추고 싶다.
나는 아무 안전 장치가 없는 프리랜서 한국어 강사로,
많이 벌다가 적게 벌다가를 반복하는 7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내 직업적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적이 없다.
그만큼 내 직업을 사랑하고, 내 직업을 지키기 위해 살았다.
한국어 강의하려고 난독증 센터 아가들 발음 교정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한국어 연구하려고 헤드헌팅도 하면서 책 살 돈도 벌고 사무실 임대료도 내면서 버티고 버텼다.
에이전트에서 얼마를 주든 한국어 강의라고 하면 금액 안 따지고 다 받아서
가르치면서 연구하고, 연구한 걸 현장에서 검증하는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독립이다.
에이전트를 통해서 만난 직원들과 전세계 학습자들은 나에게 항상 자극과 동기부여를 해 주셨다.
그 분들과 나눈 이야기와 던져진 질문들은 모두 나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때문에 내가 회사를 떠난다는 말은 옳지 않다.
그냥 떠날 때가 된 거겠지.
내 가치는 내가 정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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