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쓸모에 대해서 몇 달 간 생각해 보는 중이다.
작년 가을에 대학원 때 공부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교수님께 석사 논문을 드리러 학교에 갔었다.
그때 교수님이 내 근황을 들어 보시더니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한국어 문법을 배워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특강을 한번 해 보라는 거다.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갑작스럽긴 했지만 도전 거리가 생겨서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문학을 공부해서 취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말이다.
이것저것 읽어도 보고
또 이리저리 생각도 해 보고
나는 왜 이런 당장 도움도 안 되는 공부에 미쳐서 몇 년을 보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얻은 게 뭐였지?
공부하는 동안 너무 신나고 행복했는데, 나는 그때 왜 행복했더라?
속으로 묻고 묻고 묻고 대답해 보고 납득이 되는지 다시 되물었다.
나는 납득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런가 모르겠지만 결국 결단이 섰다.
인문학의 목적은 그냥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에 우울증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고, 최근에는 일련의 사건 때문에 공황장애로 꽤나 고생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요가와 명상이 꽤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었었는데 그때 읽은 책에서 명상의 목적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명상을 길게는 못하지만 내 호흡을 눈을 감고 관찰하다보면 어느새 불안이 가시는 경험을 몇 번 해 본 뒤로는 나의 "존재" 확인이 어떤 건지에 대한 감이 생겼다.
한편 자연과학의 목적은 이른바 "물질"이다.
여기서 물질은 존재와 대비되는 개념인데, 더 단단한 근거가 필요하겠지만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쯤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존재는 '정신'쯤 되려나.
너무나도 많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듯 물질의 대표 주자인 돈과 존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행복감은 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은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시덥잖은 농담이나 우스꽝스런 몸짓에 '풉' 하고 웃음이 터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물론 복권에 당첨됐을 때도 행복할 것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인문학은 경험의 압축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겠나.
영어 문법을 공부할 때 나오는 동명사며, to부정사며, 온갖 용어들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나는 이런 용어들이 여러 번의 경험 속에서 발견된 규칙, 그 규칙을 한 단어에 담은 것이라 생각한다.
국문학, 철학, 이딴 거 공부하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다소 과격하지 않나 하지만 실제로 직접적으로 물질을 가지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
가깝게는 나를 위한 학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인간을 위한 학문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졍말이지... 뭔소린가 할 것 같은데, 나도 이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개념을 학부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어 문법을 공부하는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에 대한 경험의 압축을 공부하는 것이고, 많이들 들어 왔듯 경험이라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흥미롭게도 경험은 직접 겪지 않으면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자주 봐서 알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힘들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든 것인지는 겪어야만 알 수 있다.
인문학이 그렇다. 좋다는 철학 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내 인생의 어떤 경험의 도움으로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글자의 뜻을 알기 때문에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가슴이 동하지는 못한다.
문학은 상상으로나마 경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인간으로서 생각이란 걸 하게 만든다. 문학의 가치는 거기에 있다.
예전에 위화 선생님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읽고 그 여운으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
아무튼 난 인문학 공부를 나를 위해 했다. 공부가 힘들 땐 '이깟 당장 밥벌이도 안 되는 걸 왜 하겠다고 해서..' 하고 생각할 때가 물론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고비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꽤 좋았다.
나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랄까?ㅋㅋㅋㅋㅋㅋ
와...ㅋ 좀 느끼한 듯하지만ㅋㅋ
언어를 연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언어와도 비교하게 된다. 그러다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수단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까지 가기도 하고 언어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몇 년을 보냈더랬다.
석사 과정을 끝내고 나서 석사 논문 한 권이 손에 남았는데 남들이 알아 주든 말든 "이거 제가 쓴 거예요!"하고 ㅋㅋㅋㅋㅋㅋ
온통 자랑을 하고 다닌다... ^^ 핳핳
인문학이 쓸모가 전혀 없는 학문이 아닌데 그 가치가 너무나도 평가절하가 되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날이다.
당장 손에 쥐는 초고속 인터넷도 진짜 진짜 좋지만 그 인터넷 세상 덕에 편리하고 바쁘게 살다가 정신이 아플 땐 좋아하는 노랫말에 힘을 얻을 때도 있지 않나.
공기 같이 항상 사용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한 번쯤은 그 가치를 생각해 보길.
인문학도들이 너무 자기 가치를 낮잡아 보지 않길.
'삶의 기록 > 일상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레드를 시작했다! (0) | 2025.02.05 |
|---|---|
| 한국어 강의 7년차, 가난하다 가난해. (2) | 2025.02.03 |
| M 씨가 구사하는 귀여운 한국어 (0) | 2022.12.06 |
| 안 올 것 같았던 결혼식 날의 기억 (0) | 2022.10.21 |
| 서툰 그대로 (2) | 2022.10.11 |